같은 날, 핵이 시작되고 방패가 사라졌다

2017년 3월, 주한미군 사드 한국 최초 배치 현장 · U.S. Forces Korea / Public Domain (DVIDS)

1993년 3월 12일,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했다.

핵확산금지조약. 냉전이 남긴 국제 질서의 마지막 보루 중 하나였다.
북한은 그 문을 열고 걸어 나갔다.
세계는 처음으로 ‘북핵 위기’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날이 시작이었다.

33년이 흘렀다.

2026년 3월 12일, 주한미군 사드 발사대 6기 전량이 성주기지를 떠났다.
행선지는 중동이다. 공식 발표는 없었다.
조용히, 그러나 완전히.

사드는 북핵 억제를 명분으로 한반도에 배치됐다.
배치 결정이 내려진 2016년, 찬반은 거셌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한국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밀려났고, 관광객은 끊겼다.
롯데는 중국 사업을 접었다. 사드 발사대 하나가 외교와 경제를 동시에 흔들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미군 철수를 각오하고라도 사드를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도 같은 목소리였다.

그 당이 집권했다. 그 대표가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사드는 그들의 손 안에서 떠났다.

사드는 철회되지 않았다. 철거되지도 않았다. 다만 — 반출됐다. 조건도, 협의도, 공식 입장도 없이.
“전적으로 관철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라는 말만 남긴 채.

역사는 가끔 이런 방식으로 아이러니를 완성한다.
북핵의 공식 출발점이 된 날과, 북핵 억제 수단이 한반도를 떠난 날이 같은 날짜다.
누가 설계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됐다.

기록은 날짜를 기억한다.

오늘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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