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3월 9일 오전,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투표함을 열었다.
조합원 8만 9천 명. 쟁점은 OPI, 초과이익성과급의 산정 기준이다.
노조는 상한선 폐지를 요구한다. 회사 실적이 늘어난 만큼 성과급도 비례해서 늘어야 한다는 논리다.
회사 측은 6%대 임금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OPI 상한선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경영 불확실성에 대한 안전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양측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고, 그 간극이 오늘의 투표로 이어졌다.
2024년, 삼성전자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파업을 겪었다.
반도체 업황 부진 속에서 불거진 갈등이었다.
그로부터 2년, 업황은 회복됐지만 협상 테이블의 온도는 여전히 냉랭했다.
2026년 임금협상도 결렬됐고, 중앙노동위원회 조정도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투표함이 열렸다.
이번 찬반 투표는 오는 18일까지 열흘간 이어지며, 과반이 찬성하면 파업 절차에 돌입한다.
그런데 이 날, 3월 9일에는 오래된 기억이 하나 겹친다.
1919년 3월 9일, 경성의 전차가 멈췄다.
3월 1일의 만세 소리가 거리를 흔든 지 열흘째 되던 날, 전차 운전수와 차장들이 핸들을 놓았다.
노동조합도, 단체협약도, 법적 보호도 없던 시절이었다.
일본인 감독관에게 낮은 임금을 받으며 하루 종일 레일을 달리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언어는 딱 하나였다 — 멈추는 것.
그 파업은 3월 29일까지, 꼬박 20일을 이어갔다.
3·1운동의 불길이 거리의 노동자들에게도 번진 순간이었다.

당시 경성 전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식민지 도시의 혈관이었고, 일제 자본이 관리하는 수익 사업이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본인 동료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같은 선로를 달렸다.
파업은 독립의 외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같은 일을 했으면 같은 대우를”이라는 요구이기도 했다.
파업의 언어는 시대마다 다르다.
1919년엔 생존이었고, 2026년엔 공정이다.
하지만 그 언어가 태어나는 자리는 언제나 같다 — 일한 만큼 받지 못한다는 감각,
그 뜨겁고 조용한 분노.
전차는 결국 다시 달렸다.
삼성전자의 투표 결과는 18일 뒤에 나온다.
세상이 단번에 바뀐 적은 없었다.
그래도 멈추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왔다.
오늘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