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6일 금요일. 주유소 앞에 줄이 섰다.
3월 2일,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고문 이브라힘 자바리가 국영 매체를 통해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봉쇄됐다. 통과하려는 선박을 불태울 것이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그 길목이 막혔다.
한국으로 향하던 유조선들이 멈췄다.
기름값이 움직였다. 빠르게.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27일, 전국 휘발유 평균은 리터당 1,692원이었다.
일주일도 안 돼 1,821원이 됐다. 서울은 1,882원.
단 7일 만에 약 130원이 올랐다.
경유는 더 가팔랐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213원 급등해 리터당 1,811원.
휘발유와 경유 값이 거의 같아졌다. 기름의 종류가 달라도 체감은 똑같다.

국제 유가가 국내 주유소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2~3주의 시간차가 있다.
지금 오른 것은 아직 시작일 수도 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81.4달러. JP모건은 호르무즈가 전면 봉쇄되면 유가가 7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분석, 우드맥킨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것이라 내다봤다.
환율은 1,484원. 고환율과 고유가가 동시에 한국을 누르고 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1%를 중동에 의존한다. 거의 전량이 호르무즈를 경유한다. 비축유는 약 7개월치.
정부가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휘발유 가격에 바가지를 씌우는 행위에 엄중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가격 상한선을 지정하고, 그 이상으로 파는 주유소를 단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서울 일부 주유소는 가격이 높은데도 손님이 20% 이상 늘었다고 했다.
더 오를 것을 대비해 미리 채우려는 사람들이 몰렸다.
사재기 수요가 가격을 더 끌어올리는 구조다.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바꾼 사람들도 생겼다.
지하철역 인근에서 만난 시민들은 “이번 주말 약속을 버스 타고 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또 다른 날이기도 하다.

1883년 3월 6일. 고종이 태극기를 조선의 공식 국기로 선포한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 태극기는 1882년 5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조인식 당시 역관 이응준이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그해 9월 일본에 수신사로 가던 박영효가 태극기를 만들어 고종에게 보냈다.
36년 뒤 1919년 3월 1일, 일제 강점 아래 사람들이 바로 그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나라는 빼앗겼어도 깃발은 살아 있었다.
1964년 3월 6일. 박정희 정권이 한일 국교 정상화 협상 재개를 밀어붙이던 날,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가 발족됐다.
이름이 길다. 분노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도, 배상도 없이 협상은 타결됐다.
석 달 뒤 거리로 쏟아진 학생들에게 박정희는 계엄령으로 답했다.
그 조약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논쟁이다.
기록해두고 싶은 것.
143년 전 오늘, 우리는 우리 깃발을 갖게 됐다.
62년 전 오늘, 그 깃발 아래 사람들은 굴욕에 맞섰다.
오늘, 중동의 불씨가 주유소 앞 줄로 번져 있다. 얼마나 더 번질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