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전 3일 제76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이 봉행된 가운데, 제주4.3평화공원 제주지역 행방불명 희생자 위령비 모습. (사진=박지희 기자)출처 : 제주투데이(https://www.ijejutoday.com)
1948년 4월 3일 새벽, 제주 곳곳에서 봉화가 올랐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 봉기를 빌미로, 미군정과 경찰, 서북청년단의 진압이 섬 전체를 덮쳤다.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에 탔다.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7년 7개월. 그 사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은 약 25,000명에서 30,000명. 당시 제주 인구의 열 명 중 한 명이었다.
숫자가 말한다. 말이 필요 없을 만큼.
그러나 그 숫자조차 수십 년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다. 4·3은 금기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침묵을 배웠고, 섬은 침묵을 강요받았다. 특별법이 제정된 것은 사건으로부터 52년이 지난 2000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를 처음 한 것은 2003년이었다.
지난해(2025년), 4·3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침묵을 강요받던 역사가 세계의 기억 속에 공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제, 등재 이후 첫 78주년 추념식이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약 2만 명이 모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래도 미완이다.
행방불명된 희생자 대부분의 유해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도 없다. 진압 작전에 깊이 개입했던 당시 미군정의 역할은 여전히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78년이 지났다. 기록은 이어지고 있다.
오늘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