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 흉상, 서울 전태일다리 — Photo by Dalgial,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70년 11월 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앞.
스물두 살의 재단사 전태일은 몸에 불을 붙이며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는 근로기준법 책자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하루 14시간, 먼지 가득한 다락방 작업실, 시다들의 굽은 등. 그는 그것이 불법임을 알았다. 법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그가 목숨으로 외친 것은 날짜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오래된 것이었다.
1923년 5월 1일,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에 모였다. 식민 지배와 탄압 속에서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조선 최초의 노동절 집회였다. 쉬는 날을 달라는 목소리는 그때도 있었다. 그때도 외면받았다.
세월은 흘렀다.
5월 1일은 오랫동안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법정공휴일이 아니었다. 민간 기업 노동자들에게는 쉬는 날이었어도, 공무원과 교사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같은 날,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했다. 그 불균형이 수십 년 동안 이어졌다.
2026년 3월 2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노동절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이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공무원, 교사, 특수고용직까지 포함한 전면 법정공휴일. 본회의 의결이 남아 있지만, 문턱을 넘었다.
전태일이 외친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56년이 걸렸다.
그가 가슴에 품고 있던 근로기준법 책자가 어떤 무게였는지, 이제 조금은 더 알 것 같다. 법이 있다는 것과 법이 살아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그 거리를 좁히는 데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1923년의 거리, 1970년의 불꽃, 2026년의 의결.
같은 질문이 다른 형태로 이어져 왔다. 우리는 쉴 수 있는가.
오늘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