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 1983년 — Public Domain, 미국 국립기록원(NARA)
2026년 3월 24일, 국무회의가 조용히 의결 하나를 통과시켰다.
12·12 군사반란 가담자 10명의 무공훈장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2006년 취소된 13명과는 별개로, 이번에 처음 포함된 인물들이었다.
충무무공훈장. 1980년과 1981년 사이, 그들 스스로가 집권한 권력 아래에서 수여된 훈장이었다.
1979년 12월 12일 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하나회 장교들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법으로 체포했다.
대통령 재가도 없었다. 적법한 명령도 없었다. 총구로 군의 지휘 계통을 무너뜨린 밤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반란의 주역들은 스스로에게 훈장을 달았다.
공적이라고 적힌 그 자리에는, 반란이 있었다.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두환은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노태우에게는 징역 17년이 확정되었다. 군사반란과 내란죄가 확정된 순간이었다.
이듬해 두 사람은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역사의 기록은 지워지지 않았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형사처벌을 받은 13명의 서훈을 취소했다.
당시 전체 취소 규모는 176명에 달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26년의 취소는 결이 다르다.
정부는 이번 취소의 근거로 “공적 자체가 없었다”는 논리를 공식 입장으로 밝혔다. 형사처벌 여부가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반란이었으므로 포상의 근거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선언이다.
원천 무효.
훈장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훈장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역사가 다시 쓰인다.
반란은 단 한 번 일어나지 않는다.
총성이 울린 그날 밤만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진 포상과 침묵과 사면의 세월 속에서 반란은 계속 정당화되어 왔다. 훈장은 그 정당화의 물적 증거였다.
46년이 걸렸다.
기록을 지우는 데 46년이 걸렸고, 지워야 할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도, 기록한다.